동인
생존 욕구의 접점으로의 세상
작업을 하면서 최대한 본능적이 튀어오르도록 표현하려고 합니다. 아마 그 본능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긴 호흡으로 잘 끌고가지 못하는 것과 강렬하게 튀어오르는 색감에서 보여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표현하는 것은 대체로 생존과 직결된 여러 방향의 인상들입니다. 외부에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존재로 다가오는 것들, 인간관계, 그리고 우리 집을 같이 공유하는 작은 동식물, 곤충, 미생물들. 지금 제가 서있는 시스템도, 다른 생물들과 저의 접점 혹은 충돌도 전부 살고자하는 의지가 부닥쳐 발생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지들이 꿰어져 지금 세상의 표면을 만들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전시를 설치할 때 작업물 하나하나가 단독으로 시야에 보이는 것보다 시야 안에 서로 걸쳐있는 것을 선호합니다. 전시마다 배치가 새롭게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관계성이 발생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생존 욕구로 발생하는 관계성과 고전적 접근
삶에는 치열함과 때로는 벼랑 끝에 서있는 듯한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화면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내는 화신같은 의지를 직조하고 싶습니다. 몇몇의 생존 의지가 저에게 와닿고 그 사이에서 서로간 생존 의지를 내뿜으면서, 때로는 저도 모르는 사이 우호 관계를 맺기도 하고 때로는 적대성을 가지면서 살아왔을 것입니다.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반면, 나비효과처럼 먼 곳에서 작게 움직이지만 영향이 오는 관계도 있을 것입니다. (생물 전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람의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도 합니다.)
생태계의 구조 같은 것을 체감하고, 살아내려는 의지를 표현하면서 질기게 살아가는 힘을 고양시키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 작업이 다소 고전적이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야생의 의지와 생명력 탐구
저는 스스로의 의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다른 삶들을 관찰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도, 다른 생물종의 삶도 흥미를 끄는 포인트가 있으면 가림없이 탐구합니다. 그들이 가진 상황 안에서 삶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그 의지에 대해서 감탄하면서요.
온갖 잡스러운 생물과 블로그 글 등을 다 보지만, 그 중에서도 현재까지 주되게 관찰하면서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것들에는 나무와 사자, 곤충(벌레)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해부된 그들의 생리와 생태를 탐구하지만, 인간의 오래된 시선으로 그들을 해석합니다.
나무는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유연하고 위대하단 인상을 받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체에 불편함이 왔을 때, 나무가 상처를 안고 성장하는 바를 보며 많은 응원을 받았습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터전을 만들어 나가는 것. 상처에 대해서 자신의 형질과 주변을 활용해 치료하 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줄 아는 것. 육중하고 질긴 생명력.’ 이란 인상을 부여합니다. 사자는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더라도, 죽음 앞에서도 사자로서 삶을 마감하는 것을 보며 ’발악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하다 쓸려가는 것.가고자하는 길을 아는 것‘ 으로 저에게 기억됩니다. 곤충/벌레는 생활환경에서 불편하게 마주치거나, 길위에서 흥미롭게 마주치거나 합니다. 집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대해서, 아마도 그들의 땅이었을 공간에 사람의 생활환경이 만들어졌고 터전을 잃은 그들이 다시 도래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터전을 일구어가는 것들이라 보입니다. 또한 동질감을 느꼈던 나무의 입장이라면 곤충과 벌레는 종에 따라 아군이기도 적군이기도 할 것입니다. ‘침입자이면서도 동시에 이미 침입을 당한 것들.
좋든 싫든 터전을 공유하는 것들. 혹은 일시적 동맹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