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기획지원 13
《헤르니아 때깔 나무》
작가 배규무
기획 도혜민
사진 김진솔
2022. 3. 22. - 4. 23.
d/p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28, 낙원악기상가 417호)
기이한 모양을 따라 지팡이의 삶을 지속하기
기이한 바람이 불어온다. 옆에서 옆자리로 컷속말로 전해지던 신비가 내 앞에 다다라서는 순간 몰아치다가 이내 배경 속으로 흩어진다. 화면 위를 부유하던 인체의 형상들은 어느새 나무를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우리가 건네는 말들이 제 의미를 상실한 채 그저 소음으로, 웅얼거림으로, 불필요한 신호로 주변을 맴돌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과거부터 얽혀있던 우리는 멀리서 불어오는 미세한 떨림에도 서로를 기억할 수 있다.
흉터는 상실의 흔적이자 치유의 결과이다. 어떤 아픔은 타투보다 몸에 더 가까이 새겨지는 법이다. 헤르니아를 가진 인간에게 나무 상처의 기이한 모양이 자꾸 눈길을 끄는 것처럼 아픔을 잘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더 잘 알아보는 힘이 생긴다. 흉터는 몸의 일부가 되어 사건을 기억한다. 《헤르니아 때깔 나무》는 나무의 가장 눈에 띄는 외형적 특징인 상처를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생태적 연결망을 인식하기를 시도한다.
나무의 상처가 모두 인간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무지는 나무를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화살이자 과녁을 동시에 지닌 존재는 확장하는 세계를 마구 흔들어댄다. 특히 인간 중심적 소비행태는 생태적 연결망으로서의 자연과 인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개인의 실천은 무수히 상쇄되거나 피상적인 이해 수준에 머문다. 《헤르니아 때깔 나무》 는 나무를 생태 공동체의 일부로 여기고 나무가 지닌 가치를 통하여 지속가능성을 엿보고자 한다. 인간은 다른 부류의 몸을 받아들이고 다른 존재들의 몸에 올라탈 때 잠시나마 다른 자연 속에서 살 수 있다.
배규무는 헤르니아의 일종인 경추추간판탈출증 발병 이후, 통증과 함께 지속하는 삶의 방식을 짚어보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통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붙어 숨을 고르고 근육의 긴장도를 낮추어야 비로소 주어진 하루를 꾸려갈 수 있었다. 기이한 형태를 안고 살아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건 얽힘에 잇따라 함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배규무는 살아내려 애쓰는 나무의 흔적을 짚으며 나무들 - 숲의 지속으로 인해 움직이는 그물망을 표현한다. 이는 일정함을 유지하며 사는 나무의 호흡에서 나온다.
작가는 나무의 상처에서 인체의 헤르니아와 점진적 과부하 상태를 떠올린다. 헤르니아hernia는 탈장, 디스크처럼 장기나 조직이 정위치로부터 이탈한 병적 상태를 말한다. 툭 튀어나온 흑과 불거진 나무의 상처는 제자리에서 벗어난 헤르니아를 연상케 한다. 상처는 온전한 나무의 범주에서 벗어나 보이게 하지만 이는 나무가 침입에 맞서 싸운 흔적이다. 나무는 상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특이한 방어기작을 발휘하여 스스로 상처를 회복한다. 이를 구획화라고 하는데, 상처가 발생한 부위를 격리해 부후가 퍼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무가 상처부를 구획화함으로써 상처를 딛고 다음 생장점으로 나아간다면, 인체는 상처를 입고 회복하는 과정의 반복으로 성장의 기반을 만든다. 점진적 과부하는 운동뿐만 아니라 성장의 기본원리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일정한 기준 이상의 부하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요가에서 신체의 가동범위를 늘려나가는 것처럼 근육에 가하는 부하를 조금씩 증가시키는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작가와 오랜 기간 함께하여 몸에 체화된 재료인 흙으로 나무에게 줄 갖가지 병을 만들고 혹을 떼어다 붙이는 시간은 몹시 괴로웠을 것이다. 빠르게 쌓아 올리는 흙은 때로는 무너짐을 의도하면서도 가마의 불확실성에 기대기도 했다. 헤르니아가 보이는 인체, 점진적 과부하를 통해 비정상적 형태를 달성한 인체는 나무 상처 이미지와 교차한다. 유약과 안료가 뒤섞이며 구부러진 인체 드로잉과 기이한 모양의 도자기 표면을 사이를 더 단단하게 붙들어 맨다. 생존방식을 다루는 태도에서 작가가 투영했던 인상이 드러난다.
사운드는 영화음악가이자 구체음악가인 신은빈과 협업하였다. 나무 주변에서 채집하여 재편집한 사운드는 관람객의 공감각적 체험을 이끌어낸다. 물이 바위와 흙 사이를 빠져나가 나무로 흘러 들어가는 여정, 나무와 엉킨 덩굴의 공존, 노이즈가 된 대화 등을 표현하였다. 관람객은 사운드 테이블 조작을 통해 개별 사운드 혹은 서로 중첩되는 화음을 재생할 수 있다.
기획자, 작가, 협업작가는 수목의 생장이 더뎌지고 상처를 관찰하기 좋은 시점인 작년 가을부터 올겨울까지 가평 보납산, 서울 시내와 대학로, 경북 청송군, 제주도 비자림과 곶자왈, 팽나무군락, 동해 해송숲을 직접 답사하였다. 유연한 태도로 숲길을 걸으며 기후, 토양,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의 성장 과정, 상처부, 회복 방식을 관찰하고, 나무의사의 자문을 통하여 의견을 수집하였다.
무언가를 인식하고 관심을 일구는 것은 실천의 시작이다. 모든 존재가 순환적인 생태계의 주역이지만 특히 나무가 이 생태계를 운영하는 주역이라 느껴지는 여러 이유가 있다. 나무는 이야기를 품은 채로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킨다. 나무는 자체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생명체와 조화를 이루는 것에 능숙하다. 우리는 너무나 인간적인 자기 자신을 통해서 나무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우리가 안다/본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가시화하여 특유의 존재 방식을 부각하고자 했다. 기이한 모양을 긍정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지팡이의 삶을 지속하기를 기대해본다.
기획, 글_ 도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