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생활자/ 지하화된 야생성

1. 스템의 굴레 - 몰이당하는 사냥감

생존에 대해 왜 이토록 추종하며 사는지 자문하다, 결국 내가 ‘도시의 사냥감’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스스로 도시의 시스템을 옹호하며 나를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믿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밀착시키고 헌신해야만 한다. 시스템이 양몰이를 하듯 우리를 몰아가면, 이미 벗어나는 법을 잊은 우리는 기꺼이 표적이 되어 달려나간다. 그렇게 몰려간 자들은 다시 생존을 위해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가 된다. 끊어낼 수 없는 굴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2. 도시의 생존

항상 조급하고 쫓기는 기분, 일을 하면서도 다음 일을 어떻게 해치울지 고민하는 상태. 그것이 도시 생활자의 생존이다.

시골을 벗어나 학군지의 경쟁 속에 던져지고, 어른이 되어 경제 시장에 투입되는 과정. 정교하게 짜인 시스템 속의 삶에는 ‘삶 자체에 대한 찬탄’이 없다. 나는 문명의 바깥, 안전망이 없는 세상에서 비로소 생명의 경이와 삶에 대한 찬탄을 발견했다. 숨구멍을 틔우기 위해, 그리고 삶의 기초적인 원리를 보기 위해 나는 야생의 것들이 보여주는 생존 방식을 들여다본다.

3. 전쟁과 사랑

문명의 삶 속에서 삶에 대한 찬탄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결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과 헌신이다. 태어난 후의 전과정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일종의 전쟁활동이라 한다면, 사랑과 헌신의 상태는 일시적으로 전쟁이 멈춘 상태가 아닐까.

야생에서 찬탄을 발견하는 때는, 생로병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생존을 위해 상상하지 못할 경로를 찾아내는 야생의 기작들에서다. 인간의 삶으로 치환하자면 이는 전쟁과 경쟁, 격투와 같다. 강인함과 동시에 취약함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진 본능적 속성은 동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인류는 지금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자멸할지도 모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인류가 이것을 자멸하지 않을 만큼 잘 다루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간 삶에서의 찬탄은 사랑과 헌신을 발견하는 때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쟁과 경쟁에 반대되진 않는다. 그것들은 엮여있다. 사랑과 헌신을 위해 전쟁을 치르기도 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모든 개체가 각자의 ‘전쟁’과 ‘사랑’을 번갈아 가지를 뻗어 나가며 세계가 구조화된다.

나는 인간이 실제로 가져버린 힘과 상관 없이, 정도를 지키기 위해 항상 야생의 생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4. 도시생활자의 원시적 속성

과거 미지의 영역이 아직 많고 인류가 자연의 힘을 지금보다 거대하게 느꼈을 때, 인간은 생물 각자가 가진 힘을 인정하고 모방하고자 했다. 각자가 필요한  성질을 가진 생물을 경외시하고 상징으로 삼았다. 이런 기질은 미지의 영역이 점차 줄어들면서 언뜻 과거의 것이 된 듯 보인다. 

도시는 현대적인 사냥터이다. 문명에게서는 그렇지만 개인으로 돌아오면 이러한 기질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롤모델이 있는 것,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있는 것이 가볍게 찾을 수 있는 예시이다. 또한 종교가 가진 힘이나 사주, 신점을 찾는 행동에서 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원시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업에 등장하는 생물들이 가진 속성은 기호, 상징으로 작동하여 그들이 가진 생명력을 환기하는 동시에 도시생활자에게 하나의 토템이 되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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