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디스크를 앓는 몸으로 어떻게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20대의 나이로 병상에 누워있을 때, 같은 병실의 아주머니들이 부러웠다. 나도 미래엔 몇 날이고  몇 주고 병상에 누워있었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돈벌이나 가정이 있을 수 있을까. 어느 날 지하철 역사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치킨을 꺼내먹는 노인을 보며 저것이 내 미래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때, 나는 생존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다보면, 결국 하나의 생각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들(인간이고, 짐승이고, 벌레고, 풀떼기고 가리지 않고) 왜 이렇게들 살려 애를 쓰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일까. 답도 없는 질문을 몇 번 던지다 보면, 이미 주어져버린 생生에 대해 책임지고자 하는 원초적 본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그러면 일단 내가 존재하는 세계가 돌아가는 꼴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또다시 세계에 대한 생각을 한다. 개인의 생존, 생生에 대한 책임을 위해 세상을 두 갈래로 파악한다. 하나의 갈래는 개개별의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취하는 태도이며, 나머지 하나의 갈래는 개개별의 생명이 모여 이루는 시스템의 성질이다. 그러니까 1) 다들 왜 이렇게 살려 하느냐, 2)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느냐, 3) 서로 살아남으려는 행동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가 핵심 질문들이 되겠다. 세 가지 질문들에 대해 내가 하게 되는 반응을 관찰하면, 1) 부조리를 인지할 것 또 받아들일 것, 2) 생물학적/생태학적 관찰, 3) 그로테스크 리얼리즘과 다성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질문과 이해는 내가 끝없이 생경한 이미지들을 쏟아내는 원인이 된다. 나는 이 느낌을, 생生을 전달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살아남으려는 모양새는 대체로 기이하다. 섭취하고, 침투하고, 공생하는 몸들은 친숙하면서 낯설고, 어느 것 하나 필사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개인의 삶을 유지하는 것에는 끊임없는 투지가 필요하다. 나는 생生을 유지하려는 필사적 태도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불편하다. 한편으로는 숭고하면서 한편으로는 저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속한 것으로서 이 모습을 따라야한다.

모든 곳은 공유지다. 서로는 서로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하며 서로에게 작용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벗어날 수 없는 ’스스로‘들이 모여 만든 그물망-자연이든, 문명이든- 안에 존재한다. ’스스로‘들이 모여 만든 그물망, 시스템은 개별 존재와는 달리 관조적이다. 소멸될 것은 소멸되고, 그 자리에 태어날 것이 태어난다.

개인의 삶을 조명할 때 나는, 인간된 (생존)기작으로 내가 관찰한 생물들의 탐나는 기작, 생태학적 위치를 작업으로 끌고 들어온다. 예부터 자연을 토템삼아 자신에게 투영하던 버릇 그대로, 나는 타종의 탐나는 기작들을 흡수할 수 있는 양 이입하여 화면에, 작업 안에 배치시킨다.

반면에 시스템에 대해 고민 할 때에는 일견 비극적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으나, 그 인상이 어둡지 않게 한다. 내가 관찰한 세계에서는 비극적 상像(특히 소멸) 위에는 항상 생성의 상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소멸 다음에는 필시 생성이 있고, 생성 된 것은 필연적으로 소멸한다. 신체를 가진 모든 것의 연결고리이며, 이 성질이 세계를 소진하지 않게 하는 원리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비극적인 반면에 모두를 보호하는 원리.

재료의 선택은 사유의 결과이기 이전에 생존의 조건에서 비롯되었다. 부피가 유연하고, 너무 비싸지 않은 재료 중 매력적인 재료를 탐색했다. 문방구에서 마주친 펠트는 일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 재료로 보였다. 동시에 문방구의 것과는 용도가 다르지만 펠트와 지방으로 생존에 성공하였다는 요셉 보이스의 자전적 신화를 떠올리게 했다.

펠트에 오일파스텔로 그리는 회화에서는 개인의 삶에 대한 투지와 삶-시스템의 성질을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해내려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아주 가까이서 펠트를 본다. 펠트 원단이 지닌 강렬한 색채와 오일파스텔의 색채가 만나면서 일어나는 효과와 압착된 펠트 위로 여전히 삐져나온 짧은 털들이 오일파스텔을 만나면서 두드러지는 것이 살아있던 것의 흔적이 남은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도자점토는 손의 흔적을 그대로 남기고 보존하기에 가장 영구적인 재료 중 하나이다. 도자 점토를 소성하여 만드는 조각은 ‘비어있음’을 모티브로 하여 소멸하는 추상적 형태와 동시에 생명성을 담아내려 한다. 생성도 소멸도 아닌 과정 속의 형태를 만들고, 그 재료의 성질로 인해 일어나는 변형을 그대로 수용한다. 변형은 점토를 쌓는 과정, 건조하는 과정, 가마 속에서 구워내는 과정 모두에서 일어날 수 있다.

도자 점토를 굽지 않고, 전시 상황에 맞추어 게릴라로 등장했다 사라지는 조각은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동충하초를 모티브로 한다.

점토로 만들고 과슈 채색으로 마무리하는 소형 조각은, 인간된 기작으로 ‘지니고 다니며 내 힘인 양 삼고싶은 힘을 가진 것들’을 형상화한 작은 토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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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윤회도